사기 9단의 그녀, 믿어선 안된다? - 영화 <그녀를 믿지 마세요>를 보고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어리숙한 모범생이 사기 9단을 만나 엽기 발랄한 웃음을 자아낸다. 바로 애정빙자 사기극을 다룬 영화 <그녀를 믿지 마세요>(제작 영화사시선 감독 배형준)를 가리키는 말이다.
극 중에 능숙한 거짓말로 사기녀 영주 역을 맡은 김하늘은 전작 멜로 <빙우>의 실패 때문인지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요조숙녀 수완에 많이 다가서있다. 아마도, 그녀의 전공 과목이 되지 않을까 하는 섣부른 판단아래 슬롯머신 이미지를 빌린 영화의 타이틀이 오르고..
순진한 시골약사 희철과 함께 기차 여행을 하게 되는 영주는 새사람이 되려고 다짐하는 복역수이다. 예쁜 외모와 화려한 말재주까지 갖춘 사기녀 영주(김하늘 분)를 관객은 끝까지 믿어선 안될 여자일까?
"사기 9단"이라는 별칭에 맞게 복역중에도 교도관을 속이고 가석방으로 풀려나게 되는 그녀의 기억력, 순발력 그리고 능청스러움 삼박자는 순진남을 향해 어느덧 계획적인 작업이 되어간다. 새사람이 되기란 이토록 그녀에겐 힘든걸까? 가석방이란 굴레가 그녀에게 던져준 운명의 덫이라고 하는 것이 더 낫겠다.
그녀의 목적은 자신의 누명을 벗고 가방을 찾는 것이지만 현실은 그녀에게 이를 허락하지 않는 눈치다. 결국, 거짓말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도 좋다고 판단한 영주. 마을의 오랜 터줏대감인 희철 가족과 그 주변사람들을 하나 둘 만나게 되고, 그녀를 희대의 사기꾼으로 확인하기 위한 작가의 음모는 시작되는데.. 그녀의 한 쪽 눈이 괴슴츠레 반쯤 감길 때, 자신을 함부로 건드린 희철에 대한 처절한 복수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그녀의 표정연기와 희철 앞에서 자신의 처지를 변명할 여유도 갖지 못하고 마을에서 도망(?)치려는 에피소드 또한 영화의 내러티브를 살리며 관객들에게 웃음을 자아내는 대목이다. 더욱이, 최근 TV시트콤이나 영화에서 감초연기로 물이 오른 중견 연예인들의 코믹한 연기와 대사에도 웃음을 잃지 말아야 할 듯.
"여자 하나 건드린 게 그렇게 자랑스럽냐" (희철 아버지 - 송재호 분) "희철이는 3년전에 죽었시유~" (희철 할머니 - 김지영 분)
송재호, 임하룡, 김지영 등이 상황에 따라 쏟아내는 특유의 능청맞은 대사로 우리말(사례, 건드리다: 여자를 건드리다. 툭 건드리다 등..)이 주는 언어유희 또한 영화 보는 재미를 더한다.
<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서 김하늘이 "눈 깔어"하면서 엽기발랄한 수완으로 변신해 성공했다면 이 영화 속의 영주는 그 연장선상에서 익살맞고 애교 넘치는 사기꾼 캐릭터로 변신에 성공한 듯 하다. 반면에, 강동원은 첫 데뷔작으로서 부담 때문인지 브라운관 연기에서 스크린으로 넘어오는 한계 때문인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속절없이 당하며 김하늘에 시종일관 끌려다니는 어리숙한 청년으로 분해 <엽기적인 그녀>의 견우에게 다가가려는 듯 보인다. 매운 고추를 콧물이 범벅되도록 먹거나 좋아하는 여자친구에게 선물할 반지를 잃어버린 채 프로포즈를 하는 등 영화 속 모습은 새로 탄생된 강동원의 망가진 모습이다.
하지만, 사기 9단 그녀의 노림수가 될 헛점이 많은 희철과 그 가족에게 영주는 인간적인 모습을 느끼며 변화를 겪게 되는데..<동갑내기 과외하기>의 수완이 화려한 댄스를 선보였던 것처럼 이 영화에서 김하늘은 화려한 붉은색 캣 우먼 차림으로 강동원과 가수 설운도의 "여자여자여자"를 멋지게 불러 희철에게 갈등을 일으키는데,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래 기억되는 장면이다.
"남을 속이면서 자신은 속이지 않는다"는 사기 9단의 인생관은 어쩌면 시종일관 웃음을 만들어낸 이 영화가 주려는 사랑의 메시지일 것이다. 다만, 관객들은 이 영화의 막이 내릴 때까지 그녀 아니, 감독의 파놓은 교묘한 눈속임까지도 놓쳐서는 안된다.
/ Pucc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