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남자와 여자, 이렇게 두 개의 성만이 존재한다고 사람들이 생각한지 오래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 두 개의 성은 물론 동성애와 트랜스 젠더라는 새로운 성 정체성들이 나타나면서 그 두 개의 성은 다시 여러 개의 성으로나뉘어 지고 있다. 물론 오래 전부터 그 여러 개의 성은 존재했었겠지만 그 만큼 급속도로 세상이 변하고 있으니 여러 성들의 정체는 이제 사회 구성원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가운데 알랭 벨라이너 감독의 [나의 장미빛 인생]이란 영화는 어린 루도빅이란 인물로 사회가 가진 두 개의 성을 제외한 다른 성들을 배척하고 있는 사회의 인식들을 그리 무겁지 않게 경쾌하면서도 잔잔한 여운을 주는 영화인 듯 하다.
[나의 장미빛 인생]은 그 동안 할리우드 영화들의 화려한 영상에 익숙해져서인지 어색하고 촌스럽게만 느껴지는 명도 낮은 영상, 특히 푸른색의 영상이 이 영화의 시작이며 주된 이미지였다. 하지만 그 푸른색 영상은 루도빅이 처한 쓸쓸하고 암울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가끔 나오는 동화 같은 화면은 루도빅의 정신 세계를 나타내는 등 대사와 더불어 영상만으로 루도빅이 처한 현실과 그의 정신 세계에 더욱 공감하고 빠져 들 수밖에 없다. 영화의 시작은 루도빅의 성 정체성은 무시한 채 그저 평범한 삶들을 보여준다. 루도빅의 이웃들과 루도빅의 가족들을 보여주며 그저 안이한 일상을 보여준다. 그 중 재미있는 것은 이웃이나 루도빅의 아버지가 다니는 회사는 경보 벨 회사인데 여기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보 벨이란 것은 우리와 다른 외부인을 차단한다는 장치의 의미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이 설정은 우연이 아니며 암시의 한 매개체이다. 루도빅을 포함해 아이들은 똑같은 학교에 똑같은 차로 등교하고 이웃의 집은 루도빅의 집과 똑같은 모습으로 지어있다. 그저 차이점이라곤 이웃의 화장실 위치가 반대인 점을 제외하곤 똑같다. 그만큼 이 장치로 인해 루도빅의 성의 정체성에 큰 파장을 일으키려 한다.
하지만 [나의 장미빛 인생]은 섹슈얼리티나 동성애를 심각하게 논하는 영화는 아니다. 영화 속 루도빅은 자신이 여성이라고 생각하지만‘커밍아웃’이라 부르기엔 좀 미흡하다. 성장하는 과정 중에 느끼는 성 정체성의 혼란으로 볼 수도 있다. 어쩌면 이 영화는 루도빅이라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처음엔 성 정체성 문제를 이끌어가다 결국엔 ‘어른 vs 아이’의 갈등이 극한 상황으로 치닫는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아이의 시선에서 어른들 세계의 부조리함을 조망하는 영화로 봐도 무방할 할 듯 하며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가족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영화에서 등장하는 크리스틴이라는 여자아이이다. 그녀는 남자처럼 말하고 행동하며 드레스를 입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반대로 부모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루도빅에겐 바지가 불편하다. 자신이 여성에 가깝다고 느끼는 루도빅은 현실 세계 대신, 광고판 속세계를 동경한다. 알랭 베를리네 감독은 아이의 섹슈얼리티에 관한 언급에 동화와 판타지를 이어 붙인다. 만화적으로 빚어낸 광고판의 세계는 루도빅이 꿈꾸는 아름답고 고립된 세상이며 영화 결말은 열린 사회 인식을 취하려 하지만 그래도 미적지근한 구석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사실 영화 속의 대부분 인물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성에 동경을 가지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지만 이 영화는 이런 관념을 아주 다른 시각에서 보게끔 하고 인간의 성은 그 정신적 세계가 결정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우리 스스로가 가지게끔 한다. 게다가 아직 한국인에게는 생소한 동성애를 우리가 늘 생각해 오던 시점이 아닌 새로운 시점에서 동성애를 생각하게 하고, 평범하지 못한 이들에 대한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의 그릇된 자만심과 배척심도 느끼게 한다. 물론 위에서 언급했듯 내러티브 면에서 미적지근 구석이 있지만은 한없이 작고 여리기만 한 루도빅이란 소년을 매개로 하여 이 세상의 사람들에게 아주 까다롭지만 널린 시선을 안겨준 듯 하다.
끝으로 성의 외면적인 면에서 단지 여자성기나 남자성기를 가졌다는 이유로 자신이 원하는 성을 가지지 못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이 외면적인 성을 지니게 되었고 그 성의 특성에 맞추어 강요당하는 현실이니 아무리 사회에서 성의 정체성에 이슈를 가져보고 가져본다지만 아직까진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엔 사회 인식의 폭이 너무 좁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영화를 보고 타인의 성 정체성에 관대한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지만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져본다. 만약 내 주변에 동성애 같은 이미 자신이 지니고 있는 성의 정체성을 버리고 새로운 성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을 경우 자신에게 주어진 성 정체성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생활하는 사람들을 대하듯 그 또는 그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대할 수 있을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