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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랑] 주관적인 생각. 인랑
touch78 2000-12-22 오후 1:34:49 1793   [17]

人狼 (Jinroh:인랑)


                              - 1 -

    오시이 마모루가 바라보는 세계는 어둡고 비관적이다. 그것은 그의 첫 극장용 애니메이션인 <우르세이야쯔라 -뷰티풀드리머>에서부터 비롯되어 가장 최근작인 실사영화 <아바론>에까지 이어진다. 그가 집요하게 추적해 들어가는 것은 물질자본주의가 뱉어낸 소외와 고독, 개인과 집단, 그리고 정체성의 상실이다.

                             - 2 -

    <인랑>은 오키우라 히로유키라는 유능한 작화감독 출신의 33세 청년이 감독한 작품이지만 원작과 극본이 오시이 마모루의 머리 속에서 나왔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그의 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랑>은 그의 지금까지의 영화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오시이 마모루는 이야기의 골격에 휴머니즘이나 로맨스를 절대로 첨가하지 않는다. 물론 여자만 사는 세상도 아니고 남자만 사는 세상도 아니기 때문에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다 보면 그렇고 그런(?) 에피소드들이 생겨나기 마련이지만 오시이 마모루는 그것을 영화의 맛과는 전혀 상관없는 장식으로만 사용해 왔다. <패트레이버 극장판1,2>의 아스마와 노아, 시노부와 시게도 그랬고 <공각기동대>의 모토코와 바트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인랑>의 아마미야와 후세는 이야기의 골격에 서있다.
    <인랑>은 집단, 사회 속에서 그들이 제공하는 소속감과 명분을 맹신하며 살아가는 개인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쫓고있는 것은 오시이와 같지만 오키우라는 다른 결론을 보여주었다. (물론 원작을 보지않아 오시이가 내려는 결말은 모르지만 아마도 다른 느낌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오키우라가 집단 사회 속에서 개인이 정체성을 찾는 탈출구로 제시한 것은 "사랑"이다. 다시말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을 "사랑"으로 보는 휴머니스트인 것이다. 라스트에서 "엄마, 귀가 왜 그렇게 길어요?! 엄마, 눈이 왜 그렇게 커요?! 엄마, 손톱이 왜 그렇게 길어요?! 엄마, 이가 왜 그렇게 커요?!"라며 후세에게 매달려 동화 <빨간두건>의 마지막 부분 대사를 외치는 아마미야와 그녀를 쏘지 못하고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후세의 모습은 그런 오키우라의 목소리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그것은 오시이 마모루의 비관적 세계가 제시한 문제에 대한 오키우라의 해답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인랑>을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로 보았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그 비극에 전율했고 그 사랑에 눈물을 흘렸다.

                              - 3 -

     <인랑>을 보다보면 다소 진부한 부분이 보이기도 한다. 헐리웃 영화에서 자주 봐서 이젠 식상한 전이 그것인데, 이 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이라고 하더라도 영화는 분위기로써 그것을 충분히 커버해 내고 있다. 어둡고 음침하면서 몽환적인 <인랑>의 분위기는 그 반전을 미스테리 스릴러 영화에서 볼수 있던 반전과는 격이 틀린 것으로 보게 만든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런 스토리텔링을 떠나 내면에 품고있는 것을 느끼는 것이 무엇보다 감독이나 원작자의 의도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반전의 단점은 충분히 눈감아 줄 수 있다.

                              - 4 -

    <인랑>의 분위기의 반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음악이다. 미조구치 하지메와 칸노 요코 부부가 들어낸 이 영화의 음악들은 어둡고 몽환적이면서도 탈출구를 만들어놓고 그 뒤에 기다리고 있는 희망과 사랑을 표현한다. 오키우라가 의도한 영화의 색깔을 확실하게 뒷받침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음악을 그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참고로 인랑의 음악은 미조구치 하지메가 담당했으나 주제곡의 보컬을 부른 가브리엘라 로빈이 그의 부인 칸노 요코의 가명이라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다 그녀는 피아노로 세션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들 부부는 <나의 지구를 지켜줘(한국판명은 "내사랑 앨리스")>에서도 함께 했으며, 칸노 요코의 경우 <카우보이 비밥>, <에스카플로네>, <브레인 파워드>, <마크로스 플러스> 등등의 수많은 걸작 O.S.T를 만들어낸 일본 애니메이션 음악계의 최고봉이다.)

                                                                                               - 5 -

    <인랑>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과연 인간인가?" 라고.. <인랑>에서 "늑대의 탈을 쓴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탈을 쓴 늑대"라는 대사가 나온다. 늑대는 집단생활을 하는 집승이다. 소속감이 아주 강하며 항상 함께 다니며 집단이 곧 하나라는 일체감을 갖고 있다. 나는 이 영화를 처음 알게 되면서 "왜 하필 늑대?"라는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었다. 단순히 사납고 차가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는 아닐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그 해답은 영화를 본 후에 어렴풋이 얻을 수 있었다. 그것은 인간이 늑대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 더 자세히 말해 현재의 물질자본주의 사회에서 스스로의 개인을, 정체성을 잃고 살아가는 우리들이 늑대와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점이 과연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은 우회적이면서도 너무나 직설적인 비판이다. 우리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을 잃어가고 있으며 (아니 처음부터 그런건 없었을지도..)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그나마 작은 희망이 "사랑"이라고 오키우라 히로유키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감독의 주관적인 견해일테지만.. (설마 이게 원작자의 의견을 아닐거라 생각한다. 내가 아는 오시이는 이런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하지만 이것 역시 오시이의 작품이었던 지라 마지막은 정말 가혹한 현실을 냉정한 시선으로 보면서 끝내고 있다. "..그리고 늑대는 소녀를 잡아먹었다."라는 마지막 대사는 아직 우리의 정체성 찾기는 집단과 사회라는 거대한 이데올로기의 매커니즘의 하나를 상대로 많은 희생을 치뤄야 하는 운명을 갖고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 6 -

    동숭시네마텍에서 영화를 보고 집까지 오면서 내내 어두운 표정으로 골똘히 생각에 잠긴 채 왔다. 보고 난 후의 느낌을 유지하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것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정말 여러가지 많은 생각을 했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이 사회에 적응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사회에게 소속감과 명분을 부여받고 무의식적으로 사회에 이용당하며 무의식적으로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어떻게 행동해야하며 어떻게 사고하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인랑>이 보여준 인간사회의 군상은 그야말로 밀림의 먹고먹히는 약육강식의 세계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리고 정말로 이 현실은 그렇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 영화가 나에게 던져준 여러가지 문제에 대한 해답을 하나도 찾아내지 못했다. 아마도 내 인생은 이 문제와 함께 할듯 싶다. 늑대는 소녀를 잡아 먹었지만, 언젠가 그 소녀가 늑대의 배를 가르고 나오는 것을 희망하면서 말이다.


e-mail : touch-78@hanmail.net


(총 0명 참여)
pecker119
감사해요.   
2010-07-03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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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랑(1999, JIN-ROH: The Wolf Brig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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