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적인 문제가 다시 한번 드러났다. 한국의 대작애니메이션의 고질적인 문제라면 스토리의 부재라고 한다. 나는 스토리의 부재라기 보다는 구성의 부실함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제는 흥행성이다. 흥행이 따르지 않는 작품은 실패한 것이다. 흥행은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관객이 작품속에서 뭔가 건졌을 때 흥행이 따라온다. 그것이 철학이든 뭐든 하여간에 뭔가를 건져야 한다.
축구경기를 예로 들어보자. 브라질-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간의 월드컵축경기가 0-0으로 끝난다. 그렇더라도 보는 사람은 재미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실력이 관객으로 하여금 긴장감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절묘한 패스와 슛... 비록 점수는 안나더라도 경기내내 긴장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보고난 뒤에 생각하면 남는 것은 없다. 하지만 경기내내 뭔가 즐거웠다는 느낌은 남는다. 그래서 다음에 그들의 경기가 있으면 또 보게 된다. 반면에 고등학교 팀간의 축구경기가 0-0으로 끝난다. 보고 나면 욕나온다. 이런 것을 TV중계하는거냐? 긴장감이 안생기기 때문이다. 보고난 뒤에 생각하면 남는 것은 없다. 보는 도중에도 재미없다.
한국애니와 일본애니의 결정적인 차이는 이것이다. 만화를 즐겨보는 사람은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안다. 일본의 치밀함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거의 전문가적 지식이 수없이 등장한다. 긴장된다. 언제 어디에 단서가 숨어있을지 모르고 그 단서를 놓치면 안되기 때문이다. 반면에 한국만화는 그야말로 주인공의 신적인 능력(신의 아들) 혹은 신비로운 현상에 의해 문제가 해결되어 버린다. 그러니 긴장감이 안생긴다.
블루시걸이 실패한 이유는 누가 뭐라해도 그 스토리구성의 황당무계함이다. 클라이막스에서 한국인인 주인공이 일본인인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것은 갑자기 무슨 신비로운 빛(아무런 설명도 없다.)이 나오고 상대방이 어리둥절해하는 사이에 주인공이 쓰러뜨리고 그것으로 끝났다. 아마게돈도 비슷하다. 이렇게 황당무계한 식으로 결정이 나서야 보는 내내 긴장감이 생길 수가 없다. 왜냐하면 설령 중간부분을 놓치더라도 어차피 단서는 없었고, 그냥 이상하고 연관성 없는 이유로 사건이 해결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현세의 남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이 일본을 전쟁에서 이기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전자기장으로 인해 양국의 전자기기가 마비되었을 때 일본군은 한국으로 올 수 없었는데 한국군은 일본으로 건너갈 수 없었고 그 이유가 '대한항공 조종사들은 현해탄을 무수히 건너봤고 아무런 장비없이 눈으로만 보고 가도 정확한 위치에 갈수 있었으므로 한국군은 그 민간조종사들을 따라가면 됐다.'는 참으로 허무맹랑하고 어처구니없는 이유에서였다.
이러니 보는 동안 긴장감이 생기겠는가? 공각기동대나 아발론 등 애니가 그야말로 재미없음에도 뭔가가 있었던 것처럼 느껴진 이유는 영화의 곳곳에 단서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는 긴장감 때문이다. 어차피 영화란 것이 보고나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보는 동안 뭔가 즐거웠다는 느낌은 남는다.
한국애니와 일본애니의 차이는 한마디로 고등학교축구경기와 브라질-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간의 경기와 비슷하다.
수준이 누가 높고 낮다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흥행을 가져오는 것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보라는 말이다. 일본애니메이션계의 기획에 의해 한국애니메이션계가 하청작업을 해온 역사로 인해 기술적인 면에서는 뛰어날지 모르겠지만 흥행을 가져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획마인드는 뒤쳐져도 한참 뒤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