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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목]"심장있는 모든이들을 위한 수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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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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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e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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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15 오전 12:24: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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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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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암을 개봉일날 보지 못한 것은 큰 실수였다. 보다 일찍알았더라면... 아니 일주일만 더 일찍 알았더라도... 지나가는 이들을 붙잡고 이 훌륭하게 잘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을 보러 영화관으로 달려가달라고 목놓아 애원했을 것이다. 이렇게 잊혀져서는 , 언급되지 않아서는 안된다고 각종 매체에 투고라도 했을 것이다.
각종메일함을 뒤져 등록해놓은 모든 이메일을 향해 길손이의 사진과 함께 이애니메이션을 봐야만 하는 타당한 근거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전체메일을 정성스레 혹은 간절하게 띄웠을것이다. 그러나...진정... 슬프게도... 때는 이미 늦어버렸고, 혹독한 한국상업영화시장의 법칙을 오세암은 결국...견뎌내지 못했다.(내가 이영화를 본 것이 5월5일이었는데, 그주주말에 오세암은 서울상영4개관으로 상영관을 대폭줄였다.)
오세암은 정채봉선생님의 원작동화를 애니메이션화한 15억원의 저예산(이 단어는 적절하다. 이것은 분명, 애니메이션으로는 저예산의 제작비로 제작된 것이 분명하다.)프로젝트다. 우리에게 잊혀진(나는 이단어를 사용하면서도, 눈물이 난다. 어떤이유에서건 깊은 정성과 영혼을 위로하는 진심이 담긴 작품들이 모두에게 너무도 쉬운방법으로 너무나 짧은기간안에 잊혀져버린다는 사실은, 진정 참기 힘들정도의 슬픔이 분명하다.) 오세암은 진정 훌륭한 애니메이션이다. TV만화 "하얀마음 백구"를만든 성백엽감독은 원작의 진심을 대단히 성공적인 방법으로 애니메이션화하는데 성공했다. 눈먼 누이 감이와 길손이의 여정에 따라붙는 카메라는 아이들의 외로움을 노출시키면서 동시에 위로한다.
감이와 길손이가 단풍잎사이에서 기뻐하는 장면이나, 길손이가 절안에서 장난치는 장면을 몽타주로 처리한 장면등을 보면 이 애니메이션이 결코 쉽게,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영화는 눈먼누이와 길손이의 애틋한 감정을 따라가면서, 수시로 아이들의 기억의 시점에서(이것이 중요하다)
과거의 비젼을 훌륭히 노출시킨다. 섬집아기 노래가 흐르며 감이와 길손이의 (주로 감이의 시점이라는 것은, 감이가 앞을 보지 못한다는것과 맞물려 매우 상징적으로 작용한다. 즉 가시적인것과 심정적인 것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관객의 심정은 큰 진폭으로 출렁이는 것이다.) 과거비젼이 몽타쥬처리되는 장면을 보는 것은 참기 힘든 슬픔을 던져준다. 세상기댈 기둥하나, 풀한포기하나 존재하지 않는 두남매에게 , 과거는 ... 한 추억이며 재산이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동생 길손이앞에서 그저 침묵해야만하는 금이의 슬픔은 "댕기"라는 훌륭한 매개체를 통해서 가시화된다. 눈이 보이지 않는 금이를 괴롭히는 동네아이들과 아이들의 부모에게 혼나는 금이의 머리에 달려있는 댕기를 보며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당신이 울지 않았다면 이글을 읽지 말아주시길 제발, 부탁드린다. 이 글에 사용된 모든 단어들과 문장들이 감상적으로만 느껴질 당신과 이와 감이의 이야기를 나눌수 있을만큼 나는 너그럽지 못하다.) 이야기는 새롭지 않지만 진심이 흐르며 단한순간도 무리한 욕심을 부리고 있지 않아 그 작품의 위상이 빛난다.
길손이의 산골 암자속에서의 외로움의 묘사와 동생을 그리워 하는 감이의 모습은 둘간의 깊디 깊은 정과, 왜 이땅위에 존재하는 모든아이들에게 어머니가, 아버지가, 가족이 필요한것인가에 대해 절실히 깨닫게 해준다. 보살앞에서 혼잣말을 반복하는 길손이를 치유해줄 어떠한 손도 내밀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 애니메이션이 결코 재미와 감동을 인위적으로 창조해(물론, 그런경우에 창조라는 단어는 적절치 못하다.)내려고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결국 길손이를 지켜주던 , 스님마저 눈보라속에 고립된다는 설정은 세상을 축소시키고 버려진 세상의 모든 아이들의 심정과 현실을 꾸밈없이 축소시킨다. 외로운 아이 길손이는 완벽하게 고립된채 보살앞에서 하루종일 혼잣말을 반복하지만 누구도 길손이의 말에 대꾸하지 않는다.
아주 오랜시간 보살과 혼잣말을 나눈 길손이가, 비젼으로나마 엄마의 얼굴을 본다는 사실은 어린아이에게도 "기다림과 고행"의 시간이 필요할때가 있다는 영화의 중의를 간접적인 방법으로 표현해낸다. 오세암은 이렇게 남다른 방법과 색다른 이야기로 승부를 걸기위해 인위적인 장치들을 불러모으지 않으며, 원작의 순수함과 재미에 인간의 정서를 요동치게 만드는 "죽음과 버려짐"에 대한 깊은 슬픔을 그려낸다.
[누나 어떻게 해야 마음을 다하는거야?]
진심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고 내가 할수 있는 모든 것들을 지극히 바쳤는데도 이루어지지 않는 일들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다. 그것이 죽음으로 사라진 어머니 아버지를 다시만나는 소망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네들을 끊임없이 그리워 하고 목이 메이도록 그 이름을 다시 부른다. 어머니 아버지 없이 살아가기에도 너무나 벅차고 고된 삶이다. 가족이라는 이름 없이 살아가기에 지독히 힘든 세상이다. 목에서 피가 넘어올정도로 가족의 이름을 부르짖고 죽음으로 떠난 어머니 아버지를 목놓아 부르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건 삶의 고단함을 깨달은 어른에게나, 삶의 고단함을 아직 모르는 아이에게나 마찬가지다.
[오세암]은 보편적인 정서를 지독히 아름다운 영상과 자연스러운 이야기 구조로 담아낸 수작중의 수작이다. 이렇게 진심을 건드리고 피울음을 뽑아내는 에니메이션은, 물론 처음이다. 보통의 착한 영화들이 이만큼의 진심만을 갖추었어도 우린 그네들의 평범함과 미진함에 손들어 주었을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오세암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지 못한 점에 심히 미안하다. 이 깊은 사과를 저 세상에 계신 정채봉선생님과 수고한 모든 제작진에게 진심을 다해 보내고 싶다. [오세암]을 잊은건 2003년 한국관객이 저지른 가장 큰 잘못중의 하나다. http://www.onreview.co.kr http://cinekim.w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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