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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게더]시대의 변화에 동승하는 첸카이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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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게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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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투게더>는 바이올린 천재와 그의 아버지 얘기이다. 실제로 감독이 TV다규멘터리 프로를 시청하다가 가난한 시골에서 북경으로 바이올린 연주자로 아들을 성공시키고자 스승을 찾는 두 부자의 얘기를 보고 영화를 구상하였다고 한다.
나는 영화를 보기전 투게더라는 영화에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다. <아이 엠 샘> <빌리 엘리어트>등 부녀지간 또는 부자간의 진한 사랑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기에 이 영화도 그 아류작이 아닐까? 하는 우려를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영화의 감독이 첸 카이거라는 소리를 듣고 혹시 이 영화가 위에 말한 영화하고는 확연히 틀린거 아니야? 하는 의문을 가졌고,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엠샘+빌리 엘리어트= 투게더인데 감동의 깊이는 더 진하다." 내가 이렇게 말한 것은 아마 영화속의 샤오천(탕 윤)의 바이올린 연주가 말로써 표현하지 못하는 부모의 사랑을 대신 말해주기 때문아니었을까?.. 음악의 힘은 역시 놀라웠다..
그러나, 투게더는 하나의 문제점을 가지고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인물의 평이한 배치에서 오는 스토리의 진부함일지도 모른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보편적인 관계에서 감독이 말하고자하는 의도를 쉽게 관객이 간파하는데서 오는 지루함을 어떻게 대처하느냐고 문제였는데 첸 카이거는 거기에다 서브코드로 음악과 현대중국의 자유주의 경제체제를 접목함으로써 이런 보편적인 소재에서 오는 식상함을 달래는 공격적인 연출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첸 카이거에 작품성향을 일단 짚어보고자 한다면 그가 문화혁명의 피해자이면 그것을 자신의 영화적 골격으로 취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일까?그는 영화적 주제보다(그 당시 중국의 정치상황에 편중해서) 화면의 탐미적구성에 집착하는 경향이 보이는데 <풍월>를 보면 주제의 확연한 조명보다 우회적으로 중국의 문화나 신비함을 그려내서 그의 감독으로써의 가치관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결국, <패왕별희>에서는 그런 성향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남으로써 서양인들에게 중국이라는 대륙 즉 오리엔탈리즘을 부풀리는 효과를 보아서 대단한 영화적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성공은 거두었지만 그가 문화혁명를 비판하던 그의 초기의 영화적 잣대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아쉬움을 보였다. 그러나 그는 분명 중국의 신비감을 표현하는데는 탁월한 재능을 가졌고 또한 우리는 그의 집착으로 생각되어지는 화면의 미(美)에 심취해있던중 영화 <투게더>는 홀컵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골프공같이 당혹스러운 영화일 수도 있다.
영화 <투게더>는 첸 카이거 감독이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는 중국의 문화적 유동성에 편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림같은 화면이라고 생각되어지지는 않지만 스크린속에 따뜻함을 베어나오게 하는 접근방식으로 리우청(아빠)과 샤오천의 부자지간 얘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감독은 따듯한 가족얘기만을 그려내고자 영화를 만든것 같지는 않다. 역시 거장이라는 소리를 듣는 감독이어서 그런지 그의 주제는 두가지로 나누어지고 있었다. 우리가 직접적으로 보고 느끼게 되는 부자간의 사랑(가족애) 하나와 그들 부자지간이 겪는 중국의 경제적,문화적 변화에서 오는 당혹감과 우려의 목소리를 숨겨진 주제로 그려낸다. 나는 샤오천이 모성를 그리워하고 굶주려있다는 설정과 아빠가 빨간모자안에 돈을 숨겨놓는 장면에서 현대자본주의의 단절성과 중국국민들의 전통적의식이 이제는 사라짐을 느낄수 있었다. 대륙인이로써의 풍모와 기상은 사라지고 시대에 변화에 편승해서 몸을 위탁하고 또한 살아남기 위해 무언가 가슴에 부족함을 느끼면서도 뛰어나갈수 밖에 없는 중국인들의 혼란을 모성애에 대한 그리움과 자본주의의 상징인 돈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보여주었다고 생각되었다.
또한 영화의 기본적 소재로 이용되는 바이올린 자체도 낮설게 느껴진 이유는 감독 첸 카이거가 주로 중국의 문화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인데 이번영화에서는 서양문화의 대표적인 예인 바이올린연주 즉 클래식을 선택함으로써 자본주의 중국을 빗대어 표현했다. 샤오천의 짝사랑 상대로 나오는 릴리가 지금의 중국인들의 의식적 변화의 사례를 대표적으로 표현한 인물이라면 아빠 리우청은 그 변화에 편승하지 못한 전통적인 가족중심의 중국인을 표방한다. 그러나, 그것이 아들을 바이올린연주자로 성공시키고자 하는 열정속에서 점점 그도 변화하고 있는 인물로 그려냄으로써 어쩔수 없이 중국인들이 그 변화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핵심적인 주제표현 부분일 것이다.
그럼, 자본주의의 이기심을 연기한 유교수(첸 카이거)를 살펴보면 그는 제자의 음악적 성공을 기리는 자리에서 제자의 성공을 꾸짓는다. 그것은 음악적으로 성숙하기를 바라는 스승의 제자 사랑이 아니라 그 제자의 음악적 재능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유교수의 얄팍한 소유욕의 표현이었다. 결국, 유교수는 샤오천의 바이올린을 숨김으로써 그의 재능을 완벽하게 소유하고 싶어함을 보이는데 유교수와 반대의 인물로 나오는 지안교수는 그런 자본주의적 이기심의 해결방안으로 대체되는 상징성을 부여받는다. 지안교수는 샤오천에게 마음으로 연주할 것을 가르치고 즐겁지 않으면 연주하지 말라는 말로 샤오천이 모성의 그리움을 달래주는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자아나 정체성을 깨우는 역할을 하는것이 바이올린임을 가르친다. 이것은 경쟁이 난무하고 돈이 우선시 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오는 인간적 정체성의 단절감을 해소시키는 대안으로 그려넣었다.
영화는 이렇게 상대적인 인물들의 이분법적 구도를 취하면서 보편적인 아버지와 아들의 얘기에서 많은 주제를 농밀하게 표현함으로써 우리에게 중국의 현실을 새롭게 보여주고 있다. 이런 점이 기존의 가족애의 그린 영화보다 더 감동적이고 극장을 나와서도 샤오천의 바이올린 연주소리가 들리는 환청을 갖게끔 만들어서 감독자신의 인식의 변화를 관객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부가적 이득을 얻음으로써 그에 대한 평가를 새롭게 써야하는 수고스러움을 우리에게 남겨버렸다.
얘기의 방향을 틀어서 영화 자체적인 얘기를 몇개 해보고 싶다.. 샤오천 역할을 한 탕윤은 실제로도 바이올린 신동소리를 듣는 내성적 성격의 소유자라고 한다. 샤오천이 북경을 와서 보고 들었던건은 그리 좋은 것들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음악과 주위의 인물들을 통해서 진정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바이올린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고, 아버지를 이해하는 인간적 성숙함을 배우는 인물로 나온다. 또한 순박한 아버지 리우청은 자본주의 변화에 흔들리면서도 아들에 대한 끊없는 사랑과 희생을 보여줌으로써 끝까지 관객들에게 감동이라는 끈을 놓지 않게하는 인물로 그려졌다. 이 영화 <투게더>는 한 부자가 변화하는 중국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자신들의 자아를 잃지 않으면서 성장해 나가는,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 문화탐방기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은 영화이기도 하다. 시장에서 쌀을 팔기위해 가격을 터무니 없이 내리면서 싸우는 상인들의 모습이나, 핸드폰으로 연인과의 은밀한 대화를 나누는 릴리의 모습을 통해서 아직까지 어정쩡한 자리에 서있는 그들의 혼란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북경의 시내모습은 정말 서울과 너무 흡사해서 나 개인적으로 무척 놀랐다는^^:: ... 좀 더 품격있는 고급스러운 가족영화를 보고 감동을 받고 싶다면 이 영화 <투게더>를 강력추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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